임오군란 발생하자 청나라에 개입 요청한 민비
청나라, 흥선대원군에 임오군란 책임 물며 납치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
오늘로부터 142년 전인 1882년 8월 26일, 청나라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1~1898년)을 텐진으로 납치했다.
당시 시대 상황은 흥선대원군 하야 후 민비(1851~1895년)와 그 민씨 일가가 권력을 장악한 시기였다. 흥선대원군은 집권 시절 쇄국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민비는 개화정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일본 세력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게 되었다.
민비의 개방정책과 일본 세력의 침투
민비가 추진한 개방정책으로 인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이 일본으로 대거 유출되었고, 쌀값이 폭등하면서 백성의 삶은 점점 더 궁핍해졌다.
구식 군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방 부문에서도 개화정책이 이뤄져 ‘별기군’이라는 신식 부대가 창설되었다. 별기군은 일본인 교관 아래 훈련을 받았다.
반면, 기존 조선군 편제인 5군영은 무위영과 장어영 등 2영으로 축소되었다. 이에 상당수 구식 군인이 실직자가 되었다.
또한, 구식 군인들은 봉급을 13개월치나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구식 군인들은 밀린 봉급을 쌀로 받았으나 그 쌀에는 쌀겨와 모래가 섞여 있었다. 구식 군인들은 폭발해 봉기했고, 결국 임오군란이 발생했다(1882년 7월 23일).
흥선대원군 사진 (사진제공 KBS 역사저널 그날 유튜브 캡쳐)
그들의 척결 대상은 민씨와 일본 세력이었다. 구식 군인들은 흥선대원군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고종은 흥선대원군에게 다시 전권을 위임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을 진정시키고 군제를 개편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민비는 청나라에 개입을 요청했다. 이로 인해 청나라 군사가 조선에 진입해 구식 군인들을 제압하고, 흥선대원군을 텐진으로 납치했다. 이후 청나라군은 한양에 주둔하며 내정 간섭을 일삼았다.
또한, 조선은 청나라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했다. 이는 청나라 상인이 조선에서 마음대로 장사할 수 있는 특권과 치외법권을 얻는 내용이었다. 청나라 자본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들어와 경제 수탈이 시작되었다.
일본도 임오군란 과정에서 습격당한 공사관을 빌미로 제물포 조약을 체결했다. 제물포 조약 내용은 조선 정부가 일본에 배상금 55만원을 지급하고, 일본 공사관 경비병의 한양 주둔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민비의 무분별한 외세 개입 정책은 한반도에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열강 군대가 주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는 나아가 청일전쟁으로 번졌다. 조선은 강대국이 노리기 좋은 이권 침탈 표적으로 전락했다.
출처 : 인천투데이(http://www.incheontoday.com)